
경주 남산은 신라 불교 미술의 흐름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산 전체에 걸쳐 분포한 수많은 불상과 마애불, 석탑, 사찰 유적은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에 이르기까지 불교가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했는지를 생생하게 전해줍니다. 이 가운데 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은 남산 불교 조각의 출발점을 보여주는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으로, 역사적·미술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 문화재입니다. 이 불상은 삼국시대 신라 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1963년 대한민국 보물 제198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후 2010년 공식 명칭이 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으로 변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자연 암벽을 깊게 파 석굴과 같은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여래좌상을 조각한 이 불상은, 신라 불교 조각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이전 단계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어 학술적으로도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보물 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 소개 및 특징
먼저 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은 경주시 남산 동쪽 기슭, 이른바 ‘부처 골짜기’라 불리는 불곡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화강암 바위를 깊이 파내어 만든 석굴 형태의 감실 안에 불상이 조각되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감실의 깊이는 약 1미터에 이르며, 단순한 마애불이 아니라 석굴식 불상의 성격을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불상이 새겨진 바위는 높이 약 3미터, 폭 4미터에 이르며, 그 중앙에 높이 약 1.7미터, 폭 1.2미터 정도의 감실을 파고 그 안에 여래좌상을 조각하였습니다. 실제 불상의 높이는 약 1.4미터로, 감실과 불상이 하나의 공간적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감실의 입구는 아치형으로 다듬어져 있어 석굴 사원의 느낌을 강하게 주며, 이는 단석산 석굴사원이나 군위 제2 석굴암과 함께 한국 석굴 불상 양식의 변천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다음은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불상의 머리는 두건을 덮어쓴 듯한 형태로 표현되어 있으며, 이 두건은 귀 부분까지 자연스럽게 덮고 있습니다. 머리에는 육계가 낮게 표현되어 있고, 머리칼은 소발 형식으로 단순하게 처리되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장식성이 거의 없는 소박한 표현은 삼국시대 불상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얼굴은 둥글고 온화한 인상을 주며, 고개를 약간 숙인 채 명상에 잠긴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눈은 다소 부은 듯 도드라지게 표현되었고, 입가는 깊게 파여 있으면서도 미소가 은은하게 번지는 모습입니다. 이러한 얼굴 표현은 인왕리 석불좌상과 유사한 점이 있으나, 전체적인 분위기는 보다 부드럽고 여성적인 인상을 띠고 있어 차별성을 보입니다. 불상의 신체 표현은 얼굴에 비해 상대적으로 간결합니다. 얼굴은 고부조로 도드라지게 표현된 반면, 몸체는 저부조로 얕게 조각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안정감 있는 구도를 이룹니다. 어깨는 각지게 표현되어 상체가 네모난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두 손은 소매 안으로 넣어 가슴 앞에서 모은 모습입니다. 이로 인해 불상 전체가 단정하고 안정적인 인상을 줍니다. 불의는 통견으로 표현되어 양 어깨를 모두 덮고 있으며, 옷의 두께감이 비교적 잘 느껴집니다. 옷깃은 매우 넓게 조각되어 있는데, 이는 태안마애삼존불상 등 삼국시대 불상에서 확인되는 전통적인 옷깃 표현과 맥을 같이합니다. 모든 옷 주름은 선각으로 표현되었으며, 소매에서 흘러내리는 선들은 마치 폭포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무릎 위의 주름은 물결처럼 겹겹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특히 무릎 아래에서 흘러내린 옷자락이 두 단으로 나뉘어 대좌를 덮고 있는 모습은 상현좌(裳懸座)의 형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러한 좌대 표현은 백제의 예산 사면석불이나 태안마애삼존불 등에서 그 양식적 선구를 찾을 수 있어, 삼국 간 불교 조각의 교류 양상을 살펴보는 데도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다리 표현에서도 삼국시대 불상의 특징이 잘 드러납니다. 오른발을 왼발 위에 올린 결가좌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발이 유난히 크게 표현되어 있어 삼국시대 불상에서 자주 나타나는 큰 손과 발의 비례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사실성보다는 상징성과 힘을 중시하던 당시의 조형 의식을 반영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역사와 관광 활동
이번에는 역사적 배경과 의미를 알아보겠습니다. 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은 현재 남아 있는 경주 남산의 불상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조각 양식과 표현 기법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삼국시대 신라 후기인 6세기 전반에서 중반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시기는 신라가 불교를 공인한 이후, 본격적으로 불교 조형물을 제작하기 시작한 시점과 맞물립니다. 따라서 이 불상은 단순한 종교 조형물을 넘어, 신라 불교 조각의 출발점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불상으로 인해 해당 계곡이 ‘부처 골짜기’, 즉 불곡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이는 이 여래좌상이 단순한 신앙 대상이 아니라, 지역 전체의 정체성과 지명을 형성할 정도로 중요한 존재였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이 불상은 석굴식 조성 기법을 보여주는 초기 사례 중 하나로, 이후 통일신라 시대에 완성되는 석굴암으로 이어지는 한국 석굴 불교 조각의 계보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자연 암벽을 깊게 파 감실을 만들고 그 안에 불상을 조각한 방식은, 인도와 중국 불교 석굴 문화의 영향을 토착화한 결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한편, 이 불상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학설도 제기된 바 있습니다. 김기흥 교수는 신라의 왕즉불 사상에 근거하여, 이 여래좌상의 얼굴이 실제 선덕여왕의 모습을 본떠 제작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하였습니다. 이는 불상이 단순한 종교적 상징을 넘어, 당시 왕권과 불교 사상이 결합된 결과물일 수 있음을 시사하는 주장으로, 학계의 관심을 받아왔습니다. 다음은 관광 및 답사 가치를 알려드리겠습니다. 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은 현재도 비교적 자연 그대로의 환경 속에 보존되어 있어, 답사를 통해 그 가치를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문화재입니다. 울창한 대숲과 산죽 사이에 자리한 불상은 인위적인 전시 공간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고요함과 신성함을 전해줍니다. 불곡 일대는 경주 남산 탐방 코스 중에서도 비교적 조용한 구간에 속하며, 역사와 불교 미술에 관심 있는 탐방객들에게 특히 의미 있는 장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불상 앞에 서면 삼국시대 신라인들이 품었던 신앙과 염원, 그리고 불교를 통해 나라와 개인의 안정을 기원하던 마음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됩니다. 답사 시에는 문화재 보호를 위해 불상에 직접 손을 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자연 훼손이나 쓰레기 투기를 삼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관람 예절은 문화유산을 후대에 온전히 전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결론
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은 화려함보다는 소박함, 장엄함보다는 고졸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불상입니다. 삼국시대 신라 불교 조각의 초기 모습을 간직한 이 작품은, 이후 통일신라 불교 미술로 이어지는 흐름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안정된 구도와 단아한 형태, 부드러운 양감 속에서 은은하게 발산되는 불력은 이 불상이 단순한 조형물을 넘어 깊은 정신성을 지닌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자연 암벽과 하나가 된 여래좌상의 모습은, 인간과 자연, 신앙과 예술이 조화롭게 공존하던 신라 사회의 이상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경주 남산을 찾으신다면 불곡 마애여래좌상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천오백 년의 시간을 넘어 전해지는 고요한 미소와 마주해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그 순간, 한국 불교 미술의 시작과 신라인들의 깊은 신앙심을 함께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