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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보물 부여 석조> 소개 및 특징, 역사와 관광 활동, 결론

by 대한보물 2026. 2. 2.

부여 석조 사진
부여 석조 사진

부여 석조는 백제 사비도읍기(538~660)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화강암 재질의 작품으로, 전체 높이가 약 157cm에 이릅니다. 연꽃을 연상시키는 부드러운 곡선 형태와 극도로 절제된 장식이 특징이며, 화려한 불교 조각과 달리 아무런 장식 없이 형태 자체로 아름다움을 표현합니다. 이 유물은 백제 미술의 본질인 소박함과 세련됨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왕궁에서 사용된 석련지(石蓮池)로 보는 학설이 지배적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부여현 동헌 앞에서 관아의 상징처럼 놓여 있다가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재 국립부여박물관으로 옮겨진 이 석조는, 단순히 돌 하나가 아니라 백제라는 왕국이 남긴 가장 깊은 흔적 중 하나로 남아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보물 부여 석조> 소개 및 특징

대한민국의 보물 부여 석조(扶餘 石槽)는 백제 시대를 대표하는 석조 유물로,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94호로 지정되어 있는 부여 석조의 소개와 특징을 자세하게 알아보겠습니다. 현재 충청남도 부여군에 위치한 국립부여박물관 로비 중앙에서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으며, 단순한 기능성 석재를 넘어 백제 왕궁의 생활 문화와 미적 감각, 그리고 역사의 아픔까지 담고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부여 석조는 하부와 상부로 나뉘어 구조적으로 명확합니다. 하부는 ‘工’ 자 형태의 직사각형 받침대로, 장식 한 점 없이 매끈하게 다듬어져 화강암 고유의 질감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이 받침대 위에 올려진 상부는 둥근 꽃망울을 닮은 형태로, 입구가 살짝 오므라들며 바깥으로 부드러운 원호를 그리며 펼쳐집니다. 바닥은 평평하지 않고 완만한 곡선을 이루어 내용물이 고르게 퍼지도록 설계되었으며, 표면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8개의 세로줄이 새겨져 있어 기능성과 장식성을 동시에 충족합니다.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연꽃무늬나 어떠한 조각도 전혀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일반적인 사찰 석조(불교 의식용 물그릇이나 세정용)와 확연히 구별되는 특징으로, 학계에서는 왕궁 전용 석련지로 보는 해석이 가장 설득력 있습니다. 풍만하면서도 깔끔한 곡선 처리와 과도한 장식을 배제한 디자인은 백제인의 미적 감각과 화려함보다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태도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또한, 표면 일부에는 글씨를 새기려던 미완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이는 백제 멸망 직후 당나라 군대가 승전 기념 비문을 새기려 했으나 포기한 자국으로, 《부여 정림사지 오 층 석탑》에 새겨진 “대당평백제국”과 유사한 내용으로 추정됩니다. 이 흔적 하나만으로도 부여 석조는 단순한 미술품을 넘어 역사적 증언의 역할을 합니다.

역사와 관광 활동

부여 석조가 만들어진 시기는 백제 사비도읍기 말엽으로, 왕궁터로 전해지는 관북리 일대에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백제 왕들은 왕궁 안에 연꽃을 심어 그 아름다움을 즐겼다는 전설이 전해지며, 연꽃은 청정과 고귀함의 상징으로 왕실의 품격을 나타냈습니다. 석련지는 단순한 연못이 아니라 왕의 휴식·사색·외교 행사에서 상징적 공간으로 기능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660년 나당연합군에 의한 백제 멸망 이후 이 석조는 당나라의 승전 기념물로 이용되려 했으나 실패했고, 이후 조선 시대까지 부여현 동헌 앞에 놓여 관아의 일부처럼 존속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지역 박물관 뜰로 옮겨졌다가 해방 후 국립부여박물관으로 이전되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이 긴 여정은 백제 유산이 시대를 넘어 끈질기게 보존되어 온 과정을 보여줍니다. 부여 석조를 직접 만나려면 국립부여박물관 방문이 가장 좋습니다. 로비 중앙에 전시되어 있어 입장과 동시에 강렬한 존재감을 느끼게 되며, 주변에 백제 금동대향로·능산리 석조사리감 등 국보급 유물과 함께 백제 미술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박물관 야외 전시장에는 다양한 석조 유물이 있어 비교 관람하기 좋고, 인근 부소산성·정림사지 오 층 석탑·능산리고분군과 연결된 백제 유적 순례 코스의 핵심 지점입니다. 매년 가을 열리는 백제문화제 기간에는 특별 전시나 강연이 열리기도 하니, 가능하면 이 시기를 노려보는 것도 추천합니다. 봄 벚꽃, 가을 단풍과 어우러진 부여의 풍경 속에서 석조를 감상하면 백제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더 깊이 느낄 수 있습니다.

결론

부여 석조는 화려하지 않지만, 그 안에 담긴 간결함과 우아함으로 백제 미술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연꽃을 품은 왕궁의 석련지로서 왕의 일상과 품위를 지켜주던 이 돌은, 동시에 멸망의 비극과 유민들의 아픔까지 간직하고 있습니다. 1,400년이 넘는 세월을 거쳐 오늘날 우리 앞에 서 있는 이 유물은 단순한 문화재가 아니라, 백제라는 왕국이 우리에게 전하는 가장 소박하면서도 깊은 메시지입니다. 부여를 여행할 기회가 있다면, 국립부여박물관 로비에서 부여 석조 앞에 잠시 멈춰 서보세요. 그 순간, 백제인의 손길과 숨결이 느껴질 것입니다. 백제의 진짜 아름다움은 화려한 금빛이 아니라, 이렇게 조용하고 단아한 돌 하나에 담겨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