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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보물 청도 박곡리 석조여래좌상> 소개 및 특징, 역사와 관광 활동, 결론

by 대한보물 2026. 2. 2.

청도 박곡리 석조여래좌상 사진
청도 박곡리 석조여래좌상 사진

청도 박곡리 석조여래좌상은 석가모니여래를 좌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전체 높이가 약 2.76m(불신 높이 1.54m)에 달하는 대형 석불입니다.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박곡길 295번지(박곡리)에 자리 잡고 있으며, 대비사(大悲寺)로 들어가는 계곡 입구 마을 한쪽에 작은 보호각(불각)을 세워 안치되어 있습니다. 이 불상은 1928년 발생한 대화재로 인해 얼굴을 비롯한 상부와 광배(光背), 대좌(臺座)가 심하게 훼손되었지만, 잔존하는 신체 부분에서 통일신라 전성기의 당당하고 세련된 조형미를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경주 석굴암 본존불(국보 제24호)과 양식이 유사하다는 점에서 학계의 주목을 받아왔으며, 신라 불교 미술의 절정기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됩니다. 마을 주민들이 화재 이후에도 불각을 재건하고 불상을 모신 것은 이 석불이 단순한 유물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영적 중심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청도 지역은 운문사(보물 다수 소장)와 가까운 만큼 신라 불교문화의 보고로 여겨지며, 이 불상은 운문사와 대비되는 소박한 마을 석불로서 신라 미술의 다양성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보물 청도 박곡리 석조여래좌상> 소개 및 특징

대한민국의 보물 청도 박곡리 석조여래좌상(淸道 珀谷里 石造如來坐像)은 경상북도 청도군에 위치한 통일신라 시대(남북국 시대 신라)의 대표적인 석조 불상으로,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20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초기 명칭은 '청도박곡동석조석가여래좌상'이었으나 2010년 8월 25일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이 불상은 단순한 석불이 아니라 통일신라 전성기의 미술 양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물로, 마을 주민들이 별도의 불각을 지어 모시며 오늘날까지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청도 박곡리 석조여래좌상은 통일신라 시대(8~9세기경)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석가여래의 좌상(結跏趺坐)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불신은 화강암으로 조각되었으며, 현재는 화재로 인한 손상 때문에 얼굴의 세부 표현이 거의 알아볼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잔존하는 부분에서 온화하면서도 풍만한 인상이 느껴지며, 목 부분에 새겨진 삼도(三道, 3줄 주름)는 신라 불상의 전형적인 특징으로 뚜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어깨는 넓고 힘차게 표현되어 당당한 인상을 주고, 가슴은 두껍고 볼륨감 있게 처리되었으나 허리는 상대적으로 잘록하게 조각되어 신체 비례의 균형을 강조합니다. 이는 통일신라 불상에서 자주 보이는 '건장하면서도 우아한' 체형의 전형입니다. 불상이 입은 옷(법의)은 왼쪽 어깨에만 걸친 편삼(偏袒右肩) 형식으로,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있으며 몸에 밀착되어 옷주름이 간략하고 얕게 새겨져 있습니다. 이 옷주름 처리 방식은 과도한 장식을 피한 신라 미술의 절제된 미감을 잘 보여줍니다. 광배와 대좌는 화재로 대부분 소실되었으나, 원형 추정 시 광배는 불신 뒤에 붙어 있었을 가능성이 크고 대좌는 연꽃이나 복련(覆蓮) 형태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전체적으로 경주 석굴암 석가여래좌상과 유사한 점이 많아, 석굴암 본존불의 지역 변형 양식으로 보는 학설이 있습니다. 석굴암 불상이 동굴 내에서 빛과 조화를 이루는 데 비해, 이 불상은 야외 마을 공간에 노출되어 자연광 아래서의 당당함이 강조됩니다. 손상에도 불구하고 불상의 체형과 옷주름, 삼도의 표현은 통일신라 전성기(8세기 중엽~9세기 초)의 석불 조각 기법이 얼마나 정교했는지를 증명합니다. 얼굴이 훼손된 상태임에도 전체적인 기품과 위엄이 느껴지는 점은 이 불상이 단순한 지역 불상이 아니라 왕실이나 고급 사찰 양식을 반영한 작품이었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역사와 관광 활동

청도 박곡리 석조여래좌상의 역사는 통일신라 시대 신라 불교의 전성기와 맞물려 있습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불교가 국가 종교로 자리 잡으면서 대형 석불 제작이 활발해졌고, 이 불상은 그런 흐름 속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제작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석굴암 본존불(751년 완공)과 양식이 유사해 8세기 후반~9세기 초로 추정됩니다. 이 불상은 원래 박곡리 일대에 있던 소작갑사(小作甲寺) 또는 대비사 관련 사찰의 본존불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고려 시대 이후 사찰이 폐사되면서 마을로 옮겨져 주민들이 신앙의 대상으로 모시게 되었고, 조선 시대까지 이어졌습니다. 1928년 발생한 대화재는 불상의 최대 위기였으나, 마을 주민들이 불각을 재건하고 불상을 보호하며 오늘날까지 전승되었습니다. 1963년 보물 지정은 신라 석불의 예술적·역사적 가치를 공식 인정받은 계기였으며, 2010년 명칭 변경은 지역 명칭의 정확성을 반영한 조치입니다. 관광적으로 이 불상은 청도군 금천면 박곡리에 위치해 접근이 용이합니다. 가장 가까운 대형 사찰은 운문사(청도군 운문면)로, 운문사에서 차로 20~30분 거리입니다. 운문사 방문 시 함께 들르는 연계 코스로 인기 있으며, 주소는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박곡길 295입니다. 불상은 작은 흙담과 기와지붕 보호각 안에 모셔져 있어 마을 길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입장료는 없으며, 주민들이 관리하는 공간이므로 조용하고 경건한 관람이 요구됩니다. 추천 관광 코스로는 청도 운문사(국보·보물 다수) → 북대암 은행나무 길 산책 → 박곡리 석조여래좌상 방문(20~30분) → 대비사(대비저수지 상류) 탐방 → 청도 와인터널이나 청도읍내(석빙고·화양향교)로 이동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면 됩니다. 봄에는 주변 산벚꽃과 어우러진 불상이 고즈넉하고, 가을 단풍 아래서 신라의 위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운문사 템플스테이 참가 시 박곡리 불상을 포함한 지역 석불 탐방 프로그램이 가끔 열리기도 합니다. 주차는 마을 길가에 가능하나 좁은 도로이니 주의하세요. 사진 촬영은 가능하지만 불각 내부는 삼가는 것이 좋습니다. 청도 지역은 사찰 음식과 과일(청도 반시)로 유명해 관람 후 현지 식당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도 추천합니다.

결론

청도 박곡리 석조여래좌상은 화재로 인한 심한 손상에도 불구하고 통일신라 전성기의 당당하고 세련된 미술 양식을 고스란히 간직한 귀중한 보물입니다. 얼굴이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훼손되었지만, 삼도·어깨·가슴·허리·옷주름의 표현에서 신라 불상의 본질적인 기품과 균형미가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이 불상은 석굴암 본존불의 지역적 변형으로서 신라 미술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며, 마을 주민들의 오랜 신앙과 보호 의지가 더해져 더욱 특별합니다. 청도 여행에서 운문사와 함께 이 석불을 만난다면, 신라 불교문화의 화려한 사찰 중심과 소박한 마을 중심의 두 얼굴을 동시에 체험할 수 있습니다. 1,200년 넘는 세월을 견디며 마을 한편에 서 있는 이 불상 앞에서 잠시 멈춰 서보세요. 훼손된 얼굴 너머로 전해지는 부처의 온화한 미소와 위엄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조용한 위로와 깨달음을 선사할 것입니다. 청도 박곡리 석조여래좌상은 단순한 문화재가 아니라, 신라의 영혼이 깃든 살아 있는 유산입니다.